딜쿠샤에서 만난 종로의 고요한 근현대사 산책

평일 오전 햇살이 부드럽게 번지던 날, 종로구 행촌동의 딜쿠샤를 찾았습니다. 오래된 가옥이지만 대문 앞에 서는 순간 묘하게 낯설지 않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붉은 벽돌 담장을 따라 걷다 보면 외국식 건축의 선명한 흔적이 눈에 들어옵니다. 문을 통과하자마자 느껴지는 공기는 다른 시대의 향기를 품고 있었습니다. 정원에는 단풍잎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고,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빛이 거실 안쪽 나무 바닥에 고요히 머물러 있었습니다. 도시의 중심에서 이런 공간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놀라웠습니다. 천천히 걸으며 한 세기 전 그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상상했습니다.

 

 

 

 

1. 서촌에서 시작하는 접근 길

 

딜쿠샤는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약 15분 정도 걸으면 닿습니다. 효자동 골목을 지나 인왕산 방향으로 조금 오르면 ‘행촌공원’ 표지판이 나타나는데, 그 맞은편 언덕길 끝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차량 진입은 어렵지만 주변 도로에 공영주차장이 있어 이용이 가능합니다. 길이 좁고 경사가 있어 도보로 천천히 오르는 것이 좋습니다. 초입에는 길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벽돌담을 따라 걷는 길이 조용해 산책하듯 이동하기 좋았습니다. 아침에는 주변 주민들이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어 동네의 일상적인 분위기가 함께 느껴졌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은행잎이 살짝 흩날려 계절의 색이 더 짙어졌습니다.

 

 

2. 시간의 결을 머금은 실내 풍경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1920년대 양식의 건축미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붉은 벽돌 외벽은 시간이 흘러도 단단했고, 내부는 원목 바닥과 벽난로가 공간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습니다. 창문은 높고 넓어 채광이 풍부했고, 오후 햇살이 들어오면 내부의 황토빛 벽이 은은하게 빛났습니다. 관리 직원분이 공간의 역사와 복원 과정을 간단히 안내해 주셨는데, 당시 미국인 기자 가족의 주거 공간이자 한국 근현대사를 함께 겪은 장소였다고 합니다. 방마다 가구 배치가 실제 사용 모습을 재현해 두어,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닌 살아 있는 집처럼 느껴졌습니다. 창틀의 손잡이, 벽난로의 타일 하나까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3. 이국적 감성과 역사적 의미의 공존

 

딜쿠샤는 조선 말기 외국인 주택 중에서도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내부는 미국식 거실 구조를 따르면서도 한옥 마루의 개방감을 부분적으로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전시실에는 주인공 앨버트 테일러와 그의 아내 메리 테일러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당시 그들이 남긴 신문 기사와 편지, 사진들이 감정선을 깊게 자극했습니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겪었던 시대의 변화를 기록한 흔적들이 이 작은 공간 안에 담겨 있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습니다. 특히 지붕의 경사와 굴뚝의 조형미가 조화를 이루고 있어, 외관을 천천히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건축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딜쿠샤라는 이름이 인도어로 ‘기쁨의 궁전’이라는 뜻이라는 설명이 공간의 따뜻한 인상을 더했습니다.

 

 

4. 담백한 편의시설과 정원의 매력

 

딜쿠샤의 마당은 넓지는 않지만 정갈하게 손질되어 있었습니다. 잔디밭 중앙에는 작은 나무 벤치가 하나 놓여 있고, 주변에는 구불구불한 산책로가 이어집니다. 카페나 매점 같은 시설은 없지만, 오히려 그 단순함이 건물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해치지 않아 만족스러웠습니다. 입구 쪽에는 화장실과 음수대가 마련되어 있으며, 내부는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건물 뒤편으로는 인왕산이 가까워 바람이 시원하게 통했습니다. 잠시 벤치에 앉아 있으면 바람에 실린 낙엽 냄새가 코끝에 머물고, 멀리서 들려오는 종로의 생활 소리가 배경음처럼 잔잔하게 깔립니다. 도시 한복판에서 이런 평온함을 만나는 경험이 뜻밖이었습니다.

 

 

5. 주변의 산책 코스와 문화 공간

 

딜쿠샤 관람을 마친 뒤에는 행촌공원을 지나 인왕산 자락길로 이어지는 코스를 추천합니다. 길이 완만해 20분 정도면 서촌 마을로 내려갈 수 있습니다. 그 길목에는 ‘통인시장’이 있어 기름떡볶이와 도시락 카페를 즐기기 좋습니다. 또는 ‘윤동주문학관’ 방향으로 걷다 보면 시인의 언덕길에서 한양도성의 일부 구간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여유가 있다면 경복궁 서문 쪽으로 내려와 ‘대림미술관’이나 ‘안국동 카페거리’를 들러보는 것도 좋습니다. 각기 다른 시대의 건물들이 한 구역 안에 모여 있어 문화적 대비가 흥미로웠습니다. 도보 이동만으로 하루의 작은 여행이 완성되는 구간입니다.

 

 

6. 관람 전 알아두면 좋은 준비 사항

 

딜쿠샤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지만 사전 예약제를 운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월요일은 휴관일입니다. 내부는 촬영이 제한된 구역이 있으니 입장 전 안내판을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계단이 많지 않아 편하게 이동할 수 있지만, 일부 바닥은 원목으로 되어 있어 미끄럽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건물 내부는 냉난방이 되어 있지 않아 계절에 따라 체온에 맞는 옷차림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적은 평일 오전 시간대가 관람에 가장 쾌적했습니다. 무엇보다 주변 소음이 거의 없어 조용히 머무르며 공간의 분위기를 온전히 느끼기에 알맞았습니다.

 

 

마무리

 

딜쿠샤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한 가족의 이야기가 담긴 역사적 증언의 공간이었습니다. 붉은 벽돌과 나무 향이 어우러진 그 안에서, 과거의 시간들이 천천히 숨 쉬고 있었습니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도시 속 숨은 보석 같은 공간에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다음에는 봄 햇살이 부드럽게 내리쬘 때 다시 찾아, 정원에서 천천히 책 한 권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 안에서도 잠시 멈추어 서서 시간을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이곳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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